즉석 또는 죽빵 그리고 칩쌓기 등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운다
작게는 100원짜리부터 크게는 필자가 직접 본것은 3만 6만 까지 본기억이 있다
사실 저정도면 스포츠 라기보다는 도박이라고 불리워야할텐데 ...
어찌되었든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나도 수없이 많이 해보았다.
최근들어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즉석에 관한 야사들이 많이 전해지고 많이들 알고 있다 .
대한민국 즉석에 1인자 가 항상 당대에 회자되면서 이름이 거론되곤한다.
내가 알기로는 아마 1세대가 이리꼬마라고 불리우는 분이 대한민국 1번이지 않을까 싶다 .
이분 연세가 지금 77세 정도 된걸로 알고 있다 . 이분 덕에 그때부터 당구좀 친다 그러면 꼬마라는 애칭이 항상 불리워진거 같다.
그리고 나서 대한민국 당구계를 점령하시고 어떤이유인지는 따질필요없이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신 분이 바로 지금은 안까깝게도 돌아가셨지만 고 이상천 님 이분이 바로 대한민국 당구계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세계 1인자 자리에도 오르셨고 대한당구연맹 회장도 역임하셨던 분이시다.
이분이 얼마나 당구를 잘쳤냐하면 들려온 애기로는 그당시 대한민국에서 공좀 친다고 내노라 하는 분들이 전부 삼짜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분한테 3 삼 짜리를 받으면 대한민국에서 쓰리쿠션으로는 정상급이라고 애기할수 있다는 것이다 .
삼짜리 이런용어를 많이 쓰는떼 혹시나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 해서 잠시 보충 설명을 하자면
즉석을 칠때 실력차이를 없애기위해 치수정리를 합는게 일반적입니다.
쉽게 애기해서 잘치는 사람이 못치는 사람한테 핸디를 주는것인데 일반적으로 작은차이부터 2가락 그다음이 3가락 그다음이 원가락 을 잡아준다고 애기한다. 쉽게 애기해서 가락구전체를 잡아준다고 하면 나는 가락을 쳐도 무조건 1점 상대방은 가락구를 치면 2점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삼짜리 3 이걸준다는 뜻은 가락구는 다 잡아주고 상대방이 치면 가락구를 3점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원삼 풀삼 등등 이런용어가 생기는 것이다.
그당시 고 이상천 선수가 국내 내노라 하는 선수들을 전부 원삼은 주고 즉석을 쳤다고 하니 그당시 월드클래스와 국내 선수와의 실력 차이를 알수 있는 것이다 .
이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1번은 고 이상천 선수 라고 딱 꼬집어 애기할수 있다.
그 이후에 대회 우승자들이 많이 나와서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드는 시대이다.
1980년도에 김무순 선수가 1번이다 부터 시작해서 장성출 선수 그다음 최문갑선수 이천우 선수 김수찬선수 등등 많은 분들이 대회 우승을 하면서 국내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누가 대한민국 1번이다 이렇게 딱 꼬집아서 애기하기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
이당시 당구로 사기를 치는 사람? 들도 많았고 잘치는데 잘 못친다고 하고 당구쳐서 돈 따는 사람들을 짝대기 라고 불리웠고 어느지역에서는 당구 잘치는 사람들을 통틀어서 짝대기 라고 불리기도 했고 그당시는 핸드폰이나 지금처럼 미디어가 없었으니 확인하기도 힘들고 해서 사람말만 믿고 돈내기를 많이 한 시대이기도 했다 .
이시절 당구를 잘치는 사람들은 당구장에서 식사도 공짜로 먹고 다방에서 시켜먹는 커피도 먹고 공좀 가르쳐 주고 술도 많이 접대 받았다고 이야기를 한다.
필자가 1980년도 말부터 당구를 쳤으니 나도 그당시 당구를 잘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러웠고 신기했다.
그분들이 지금은 많은 후배들을 가르치신분들도 계시고 안타깝게도 그당시에 대접받다 보니 경제적인 활동을 안하시고 계속 당구장에서 노시다가 어렵게 말년을 보내시는 분들도 있다고 애기를 들었다.
조금은 이해가 가는것이 그당시 당구장 문화가 뿌연담배연기속에 돈먹기를 하는 모습 끝나고 나면 카드나 화투 를 가지고 노름 하고 술 먹고 그런 삶의 반복이었다고 하니 무슨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지속적인 수입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20년 현재는 당구 대회에서 우승하면 상금이 1억원 그리고 시합할때 복장에 광고 패치를 붙혀도 광고비를 받는 시대가 왔으니 그당시 당구를 쳤던 사람들과 비교하면 정말 너무 너무 많이 좋은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
물론 대한당구 연맹과 현재 PBA 와의 의견충돌로 화합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것은 당구 선수한테는 이렇튼 저렇튼 좋은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1980년도가 지나가면서 1990년도 접어들었다.
80년도에 활동하는 선수들이 90년도에도 활발히 활동하면서 SBS 서울방송에서 당구 방송을 하면서 1회 대회와 2회 대회에서 김무순 선수가 우승을 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또다시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어간다.
2탄은 다음번에....... 감사합니다.